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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의 상속이야기]

잔인한 상속, 흔들린 여인…'지푸라기 여자'

  • 보도 : 2023.04.04 08:00
  • 수정 : 2023.04.04 08:00

부귀영화를 꿈꾸는 여인의 욕망은 유죄인가? 

'고의로 상속인을 살해한 자는 상속결격자가 되고, 유언장을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 또한 같다'

조세일보
◆…[사진=윤재구 감독이 '지푸라기 여자'를 원작으로 2015년 리메이커한 영화 '은밀한 유혹'의 포스터]
"막대한 재산소유. 결혼을 전제로 상냥한 동반자 물색. 함부르크 출신 선호. 결혼경험은 없지만 인생을 아는 분. 가족도 없고 매인 데도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원하는 분. 여행을 좋아하는 분. 순진한 아가씨나 감상적인 늙은 여자 사절"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향해 가던 무렵, 30대 초반인 힐데가르트 마이스너는 신문의 공고란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잿더미로 변한 고향 함부르크를 떠나 프랑스 어느 작은 도시에서 출판사 번역으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힐데가르트가 처음 만난 사람은 60대 초반의 안톤 코르프. 유전개발로 갑부가 된 칼 리치먼드의 비서라 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칼은 가족도 없는 괴팍한 성격의 늙은이로 하체가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호화유람선, '르 베나르'를 타고 전세계의 관광지를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안톤은 그녀에게 칼의 간호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칼이 호감을 느끼면 청혼을 할 수도 있고 칼의 아내가 되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는 말도 흘렸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법적절차에 대비해 자신의 양녀로 호적에 등록해 두자 하였다.

힐데가르트는 그 제안을 군말없이 수락했다. 궁상스러운 독신여성에서 한순간에 신데렐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욕망에 신중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르 베나르호가 뉴욕항에 들어설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칼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 말이다.

분명 어젯밤에도 둘은 고급와인을 나눠 마실 정도로 건강하였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프랑스 여류작가 카트린 아를레의 장편소설, 지푸라기 여자(La femme de paille)의 줄거리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다소 진부한 서사(cliché)로 대부호의 재산을 노린 비서의 농간에 휘말려 대부호와 위장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푸라기 여자'는 1964년 베이질 데어든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007영화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숀 코너리와 지나롤로브지다가 주연으로 나왔다.

국내에는 '갈대'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윤재구 감독이 2015년 '은밀한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민법에 따르면, 힐데가르트는 가족이 없는 칼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하지만 칼의 죽음에 그녀가 관여한 것이 드러난다면 상속자격을 박탈당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 상속순위는 그녀의 법적 양아버지인 안톤이 된다.

그랬다. 이 모든 일은 안톤이 꾸민 음모였다.

안톤은 "본인 사망 시에 모든 재산을 공공재단에 기부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남긴다"는 칼의 유언장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칼의 허락도 없이 간호인 채용공고를 내고 입양서류를 조작하고 심지어 칼을 죽인 것이다.

함부르크 출신 여인을 선호한 것은 포화로 공공기관에 보관된 호적이 모두 사라져 위조가 용이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힐데가르트와 부녀 사이가 되어야 그녀가 상속인 결격상태가 되었을 때 최종적으로 자신이 상속인이 된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유산을 거머쥐고 젊은 여인들에 둘러싸여 행복을 만끽하는 안톤의 모습이 그려진다.

반면 잔인한 유산상속에 휘말린 여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던 힐데가르트는 그런 안톤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데…

한국인이 리메이크한 '은밀한 유혹'과 프랑스 작가가 쓴 '지푸라기 여자'에서 여주인공의 운명은 각각 달랐다.

전자는 여주인공을 막대한 유산의 최종 수혜자로 마무리한 반면 후자는 상속을 노리고 위장 결혼한 악녀라는 굴레를 씌워 비극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동양식 권선징악과 서양식 징벌적 정의에 부합하는 결말이라 하겠다. 막대한 유산 앞에 흔들리는 것은 남녀가 다르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법무법인 원
정찬우 고문

[약력]성균관대 법전원 법학박사, 동국대 객원교수,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저술]통일세 도입론/상속세 및 증여세법 해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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